증거 없는 강제추행의 성범죄 무죄 입증비율
"피해자 진술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일관된다"
대부분의 성범죄에서 유죄 선고를 내릴 때,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증거가 남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인 성범죄 특성상 법원의 태도는 어쩔 수 없으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전혀 성범죄 사실이 없었던 경우'와 '피해자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를 혼동한 경우'입니다.
이를 두고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지적은 오랜 기간,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진술뿐이었지만
2017년 10월, A 씨는 서울의 한 클럽에서 무대 근처에 지나가던 여성 B 씨의 신체를 만진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사례에서, 해당 사건에서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일한 증거는 "A 씨에게 신체 접촉을 당했다"라는 B 씨의 진술뿐이었는데, 이 사건은 A 씨에게 1심에서 벌금형이 선고되었습니다.
1 심은 "B 씨의 진술이 대체로 일관되고 신빙성이 있지만 두세 걸음 옮기기 어려울 만큼 붐비는 클럽에서는 의도치 않은 신체 접촉이 있을 수 있다"면서 "현란한 조명으로 B 씨가 A 씨를 강제추행 피의자로 지목했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기습적인 강제추행 건의 경우, 보통의 성범죄 무죄 입증 요령인 디지털 포렌식이나 고소한 시기와 경위, 가해자의 태도와 피해자와의 관계, 주변 CCTV, 블랙박스, 참고인 진술, 범행 전후의 문자메시지 내역 등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 CCTV가 확인되지 않는 은밀한 장소에서 찰나의 순간, 서로 전혀 일면식이 없는 상황에서 기습적인 강제추행이 일어나기 때문인데, 따라서 범죄 사실 자체의 확인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 같은 경우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을 주목하여 법원이 해당 사건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이처럼 중요한 잣대가 된 까닭은 대다수의 성범죄가 그것 말고는 증거로 삼을 게 없기 때문입니다. 무죄 추정이라는 형사처분의 대원칙을 지키려면 수많은 성범죄가 법망을 피해 빠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억울하게 강제추행 혐의를 받은 경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자청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인데, 보통 수사기관에서는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95% 이상 정확하다고 신뢰합니다. 때문에 아무런 증거가 없는 사안에서 성범죄자로 고소당한 사람이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진실 반응이 주를 이룰 경우 무혐의 처분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또한 변호인의 능력에 따라,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은 얼마든지 허점을 파고들어 법원에게 가해자의 진술이 더 신빙성 있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1심과 2심에 거쳐 다각도로 진술 내용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여타의 형사사건과 비교할 때 목격자와 같은 직접증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성폭력 형사
사건에서 유죄 입증의 중요 증거 중 하나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을 법원이 판단할 때, 무작정 가해자의 진술을 무시하고 피해자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닙니다.
성폭력 형사사건에서의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한 법관의 경험칙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일반인의 ‘통념’의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이 있거나 과학법칙에 준할 정도의 확실성을 갖춘 것이어야 합니다. 성폭력 형사사건에서의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있어 경험칙은 진술의 합리성 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되는데 이 판단 기준이 자의적이거나 불확실할 수는 없습니다.
조작된, 악의적인 진술이라고 잘 짜였다면 당연히 일관성을 얻을 수 있기에 법원은 전후 사정을 판단하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일관되지 않았다고 해서 진술이 거짓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하며 선택적이고 때로는 사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피해자나 가해자의 전후 정황과 개연성을 면밀히 살펴본 뒤 믿을만한 이야기인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 출근길 루트였던 지하철 코스를 벗어나 어느 날 갑자기 목적이 불분명하게 다른 루트의 붐비는 지하철을 탔고, 그 와중에 강제추행이 발생했다면 법원은 가해자의 의도를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매일 같은 루트의 지하철 노선을 탄 사실이 확인된다면 '나는 그저 출근길이었다'라는 가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생기는 것이죠. 이렇듯 증거가 없는 성범죄 사건에서, 의뢰인의 진술이 신빙성 있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선 핵심을 찌르는 변호인의 변론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범죄 무죄 입증 비율
물론 무죄와 무혐의는 다른 의미이지만, 무혐의 의견으로 송치된 사건 비율을 살펴보겠습니다. 19.4%. 최근 5년간 전국 경찰이 처리한 성범죄(강간·강제추행 등) 사건 중 ‘혐의 없음’(무혐의) 의견으로 송치한 비율입니다. 5명 중 한 명꼴로 무혐의 의견이 나온 수치인데, 같은 기간 경찰 전체 사건(15.4%), 폭행 사건(5%) 무혐의 의견 비율과 비교해 보면 대단히 높은 수준이죠. 경찰서별 무혐의 의견 비율은 낮게는 7.8%에서 높게는 31.4%까지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일반 여타 범죄들보다도 무죄 비율이 높은 것입니다.
성범죄 사건은 똑같은 대응을 한다면 피해자에게 대체로 유리한 소송임에도 불구하고 무혐의 비율이 굉장히 높게 나온 것입니다.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중요하다는 것은 반대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신빙성이 없을 경우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납득하기 힘든 억울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경우,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형사전문변호사와의 상담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률사무소 해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