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은 대체적으로 은밀한 공간, 일대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가 신고를 할 경우, 신분이 노출될까 두려워 피해사실을 숨기거나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여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미투 캠페인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성폭력 피해 사실을 더이상 숨기거나 외면하지 않고 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더욱이 성폭력 범죄는 2013년 6월 개정된 형법과 성폭력 특례법에서 친고죄 조항을 삭제해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기관이 범죄를 인지하여 자유롭게 수사, 처벌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또, 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 소지 등 범죄의 경우 징역형이 추가되었고 신상정보공개의 경우 성범죄자의 사진을 접수기관에서 직접 촬영함과 더불어 성범죄자의 거주지와 관련해 도로명 건물번호까지 공개하도록 하고 강간, 추행 등의 대상이 ‘부녀’만이 아닌 ‘사람’으로 확대, 개정하여 성범죄 인정 대상을 넓히고 처벌을 강화하였습니다.
출처: 여성가족부
출처:여성가족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적 지원도 강화되었는데요, 여성가족부에서는 상담, 의료, 법률, 수사 지원은 물론 피해자 보호와 사회복귀 지원까지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강화된 권리보호,지원제도는?
성폭력 피해가 발생하고 피해사실을 알리게 되면 경찰 또는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전담조사제
검찰총장은 각 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하여금 성폭력범죄 전담 검사를 지정하도록 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들로 하여금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하게 해야 합니다(「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6조제1항).
경찰청장은 각 경찰서장으로 하여금 성폭력범죄 전담 사법경찰관을 지정하도록 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들로 하여금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하게 해야 합니다(「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6조제2항).
이때, 성폭력 피해자는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요, 강화된 지원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성폭력 피해자는 여성 경찰관에게 조사를 받거나 입회하에 조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2. 피해자의 신변보호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3. 형사 절차상 법률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국선변호사 선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4. 가명을 사용해 조사를 받음으로써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5.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 가족, 동거인, 고용주, 변호사 그 밖에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를 신뢰관계인으로 동석시킬 수 있습니다.
6. 피해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영상물 녹화 장치로 촬영, 보존할 수 있습니다.
7. 영상 녹화를 하는 경우 속기사로 하여금 영상물에 대한 속기록을 작성하고 피해자, 법정 대리인은 속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8. 경찰관은 사건 처리 진행 상황 (1개월 1회) 및 종결 내용을 피해자가 요청한 방법으로 통지해야 합니다. (예외 가능)
9. 피해자가 13세 미만이거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가 경찰관과 의사소통이나 의사 표현이 어려운 경우 의사소통 중개나 보조를 해주는 진술조력인을 참여시킬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 입은 것도 억울한데 무고죄 뒤집어써
이렇게 성폭력 범죄 신고를 뒷받침하는 법적 시스템은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이다 보니, 피해 사실 입증과정에서 때아닌 2차 피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일례를 들어볼까요? 지난 3월, 클럽에서 만난 만취한 여성을 남자 넷이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했습니다. 피해자는 만취 상태였으므로 성폭력 피해사실을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알았죠. 두렵기도 했고, 가해자의 신원도 불분명한 상태였지만 성폭력에 관한 신체 증거를 모아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가해자의 신원은 모텔 cctv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는데요, 화면상에 버젓이 인사불성이 된 여성을 끌고 가는 남성들이 찍혔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합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였다는 가해자측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고 항거불능상태였다는 피해여성의 진술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모든 피해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이처럼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판가름나는데요, 위 사건처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받아들일 경우, 혐의없음으로 끝나는 것을 넘어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무고죄로 고소를 당하는 2차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 5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폭력 무고죄 검찰 통계 분석’에는 2017-2018년 1년간 성폭력 무고 단일범 사건 1,190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성폭력 무고 사건의 기소율이 낮고 유죄 판결이 선고되는 사례도 극히 적어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하는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료출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그래픽제공: 뉴스포스트]
성폭력 피해자는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지만,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잘 안난다거나 조사 과정에서 진술이 번복되거나 대질 심문 과정에서 가해자와 주장이 배치될 경우 오히려 상대방에게 무고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법률적 자문을 받아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형사전문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이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2013년 6월 성폭력 특별법의 개정으로 성폭력 피해자는 국선변호인을 통해 무료로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성폭력 범죄는 초기 진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형사범죄로 수사를 진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초기 진술과정부터 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술을 하는 것이 향후 형사재판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의 재판 진행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피해자의 고소장을 제출하거나 피해 진술 이후에 국선변호사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아 효과적인 법률 조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국선 변호인을 연기한 이보영.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현실과 드라마의 간극은 크다]
2019년 3월 기준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소속된 전담 국선 변호인은 21명이고, 각 검찰청에 소속되어 사건이 지정될 때만 활동하는 비전담 국선변호인은 전국적으로 600명정도 있는데요, 전담 변호사는 숫자도 작고 담당해야하는 사건은 많기 때문에 수사 기록을 일일이 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재판에도 참석하지 않습니다. 비전담 변호인 역시 자신의 사건을 담당하면서 국선 변호 활동을 하기 때문에 성실히 임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불이익이 없어 국선 변호인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최초 진술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고 추후 번복되거나 다른 주장을 하게 될 경우 진술의 신빙성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중간에 가해자가 합의금을 제시하며 합의를 요구해 올 경우, 법적 조언없이 응했다가 재판과정에서 피해 사실보다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가해자 측의 공방에 말려들기도 합니다. 또, 피해사실을 입증해가는 과정에서 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가해자로부터 회유나 협박에 시달리며 2차 가해를 받기도 합니다.
[중세시대부터 이어져 온 마녀사냥,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형사전문변호사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정확하게 입증해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벌이 가능하도록 돕고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대신해 사건 당시 입은 피해 사실은 물론, 사건 이후 피해자에게 일어나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재산상 피해, 미래에 일어나게 될 정신적, 물적 손실까지 예상해 민사소송에 대한 절차를 밟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대응으로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사과나 보상마저 받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요? 오히려 꽃뱀으로 몰리거나 무고죄로 고소당할 것이 두려워 신고를 망설이고 계신가요? 성폭력 사건일수록 냉철하고 이성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형사전문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