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형사·이혼전문 법률사무소 해밀
성관계 속였다면 강간죄 유죄일까, 무죄일까? 본문
현행 강간죄는 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 협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 항거불능 수준이었는지를 입증해야 했습니다.
현재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를 3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판단 기준은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강간 혐의를 인정하는 이른바 '최협의설'에 따릅니다. 즉,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어느 정도 저항했는지 여부와 그 정도가 판결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최협의설에 대한 법원의 상반된 판결
비슷한 사안을 두고 법원 시각차
부산고등법원(창원 제1형사부)은 지난해 4월 조카를 3회 강간, 1회 강제추행한 혐의(성폭력 처벌 법 위반)로 기소된 A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전통적인 최협의설에 따른 판결로,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따지면서 "맨투맨 티를 슥 벗기고 스키니진을 확 벗기고"라는 진술에 대해 더 구체적인 설명을 못했고 "양손을 잡거나 몸을 눌러 옷을 벗겼다"라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피해자가 객관적으로 반항하거나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주관적으로 더 큰일이 일어날까 무섭게 생각하고 당황스러워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죄를 성립하는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 판결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내용의 사건이지만, ‘유죄’가 나온 판결도 있죠.
대전고등법원(제1형사부)은 지난 3월 “피고인의 말과 행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반항을 하게 되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생기게 하는 말과 행동으로, 이로 인해 피해자는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또는 현저히 곤란한 심리적 상태에서 피고인이 성관계를 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못했다”며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 바 있습니다.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반항을 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함께 고려한 것인데, 이처럼 비슷한 케이스의 사건이라도 폭행 협박의 존재와 저항여부는 물리적, 직접적 저항이 어려운 전후 맥락을 함께 살펴보고 각각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위력, 위계에 의해 성관계 동의했다면 유죄? 무죄?
위력, 위계가 성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가 관건
그렇다면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해, 혹은 속임수를 이용해 성폭력을 저질렀다면 어떨까요? 피해자들은 더더욱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안희정 전 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 1심 무죄 뒤집고 상고심 징역형 확정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안희정 전 지사의 비서 성폭행 사건 1심에서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죄에 대해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고 성관계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지난해 열린 상고심에서는 안희정 전 지사의 위력에 의한 간음 죄를 인정해 징역 3년 6개월의 형이 확정되기도 했습니다.
"좋은 남자를 소개해 줄 테니 여관으로 오라"고 여성을 속여 성폭행했다면, 위계 ( 속임수 )에 의한 간음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당연히 처벌될 것 같지만, 실제로 지금까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속임수가 간음행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 위계에 의한 간음은 무죄였습니다.
위계에 의한 간음 죄란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일으킨 오인, 착각, 부지가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 착각, 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판례였습니다.
즉, 종전에는 "레슬링 놀이를 하자"라고 속인 뒤 성관계를 하는 것처럼 그 속임수가 성관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야만 '위계 간음'이 인정됐던 것입니다.
위계에 의한 간음, 무죄의 조건
성관계 동의 여부
50만 원을 주겠다며 여고생과 성관계한 뒤 정작 돈을 주지 않은 남성과 16살 가출 청소년에게 '결혼하자'라고 접근해 성관계를 맺은 남성. 두 남성 모두 속임수로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져 위계에 의한 간음 죄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두 사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피해자들이 성관계 계획 자체를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동안은 미성년자가 성관계 의미를 알고 그 관계에 동의했다면 가해자가 무죄를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해자는 도덕적 비판만 받을 뿐, 처벌은 받지 않았는데요, 최근에는 간음을 위해 속임수를 썼다면 유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달라진 법원의 판단
미성년자가 동의했어도 속임수로 인한 성관계는 유죄
2014년 채팅 앱에서 만난 14살 A 양을 속여 성관계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B 씨는 자신을 17세 고등학생으로 속이고 A 양과 교제를 해오다 계속 사귀려면 '내 선배와 성관계를 하라'라고 엉뚱한 제안을 하게 됩니다.
이 말에 속은 A 양은 결국 선배인 척하고 나타난 B 씨와 성관계를 가졌는데요, 1심과 2 심은 A 양이 성관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실에 속은 것으로 성관계 자체를 모르지 않았으므로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 합의체는 "간음을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착각을 일으키고 피해자의 이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해 성관계를 했다면 위계에 의한 간음 죄가 성립한다"라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동안 위계에 의한 간음은 직접적으로 성관계 행위 자체를 속여야 유죄로 판단해 온 그동안의 판례를 좀 더 포괄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성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동의가 있어 보여도 착취적이고 학대적인 성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아동, 청소년의 경우는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판례로 해석됩니다.
성범죄 사건, 형사전문 변호사가 필요한 이유
업무상 위력, 위계에 의한 간음 외에 13세 미만의 피보호, 감독자를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해 간음한 때에는 미성년자 의제 강간이 성립하고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인 때에는 미성년 심신미약자 간음 추행 죄가 성립합니다.
간음이 아닌 유사성교나 추행인 경우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처벌됩니다.
최근 정부에서는 미성년자 의제 강간의 기준 나이를 만 13세에서 16세로 높이는 등 청소년 대상 성범죄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됩니다. 또, 21대 국회에서는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이나 협박 대신 '의사에 반하여'나 '동의 없이'로 고치거나, 비동의 간음죄를 별도로 신설하자는 형법 개정안 9건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미투 영향과 이에 부응하는 법원의 판단 변화는 앞으로 성범죄 사건에 있어 피의자에게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의 수사와 판결로 인해 억울한 가해자가 나올 수도 있는 만큼 성범죄 사건에 연루된다면 수사 초기부터 형사 전문 변호사의 법적 조력을 통해 객관적인 사실 입증이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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